박정희가 젊은시절 걸어온 길, 박정희 연대표

2009. 11. 6. 02:57

▲ 박정희 대통령

 

요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과 관련하여 굉장히 말이 많습니다, 사실 친일논란은 그 사람 머리안에 들어가봐야 아는것입니다만,(사실 지금 박정희가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된다고해서 딱히 박정희를 추억하는 분들이 영향받을것 같지는 않은데) 그리고 딱히 생산적인 논란은 아니지만.

언젠가 한번은 정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또 나올 논란인것 같습니다.

지금이 시기적으로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 민족문제 연구소가 공개한 '박정희 혈서투서'가 실린 신문기사

 

일단, 시기가 '민감한' 시기이고, 요즘 법률이 굉장히 '민감하게' 된 관계로 제 의견주장보다는 간략하게 연대표정도만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요즘 의견주장하면 잡아갈수도 있더군요.)

나름대로 관련 책자들(존경하는 사람이 아닌 흥미로운 사람이라 집에 몇권이 굴러다닙니다.)을 짜집기해서 구성한 젊은시절의 박정희입니다.

제가 정말 간략히 결론을 내리자면, "기회주의자였고 한번 다 망했는데 6.25가 로또였다."입니다.

 

나름대로 정확한 자료를 추린다고 하였으나, 구체적인 연도나 날짜는 조금씩 오류가 있을수도 있음을 양해바랍니다.

 

 

1917.11.14 박정희 출생

1932.xx.xx 사범학교 합격

1936.04.01 첫번째 결혼(김호남과 결혼)

1937.04.01 문경공림보통학교 발령

1938.05.xx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고자 혈서투서(진충보국 멸사봉곡)를 하나 나이제한으로 입학실패

1939.12.xx 만주군관학교 합격 *연줄을 통해 입학했다는 이야기는 틀린말이 아니나, 입학당시 나이를 제외한 성적은 매우 우수했습니다.

1940.02.xx 창씨계명 다카키 마사오

1942.03.23 만주군관학교 수석졸업

1942.xx.xx 일본육사 입학

1944.03.xx 일본육사 졸업,일본 교육 총감상 수상

1944.07.xx 만주군 제8단 부관 복무

1945.08.14 일본항복, 강제 무장해제

1945.08.29 귀향

1946.09.24 조선경비사관학교(현 육군사관학교) 입학

1946.09.xx 형 박상희 죽음

1946.12.16 남로당 군사부 총책 이재복을 통해 남로당(남조선노동당) 입당

1948.03.xx 여순반란사건으로 좌익으로 색출되나, '박정희리스트'를 통해 남로당 검거에 공헌 *박정희리스트는 박정희가 작성한 남로당 조직원 명단입니다.

19xx.xx.xx 프락치 혐의로 무기징역 선고받고 이후 형집행 정지로 출소되나 직위파면

1950.06.25 전쟁을 통해 군복직

 

6.25 이후로는 박정희는 군조직안에서 승승장구하고 결국 자신의 뜻을 같이할 사람들을 만나 권력의 정점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 이후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그리고 교과서에도 자세하게 나오는 이야기이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정쩡한 중문(장문은 아니니까요.)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지적할 사항은 말씀해주시면 즉시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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