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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벤처기업의 성장과정 : 안철수 연구소의 사례"

todaki 2010. 4. 25. 16:16
“한국벤처기업의 성장과정 : 안철수 연구소의 사례"



강연에서 노트북으로 타자를 치며 말씀 내용을 받아 적었습니다.

그 강연이 저의 인생에서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었기에..

스누라이프에도 올려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정신없이 받아적느라 조금 연결이 이상하거나 빠진 부분이 있을텐데,.. 그런 미숙한 점은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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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 도사에서 4시간 촬영을 했다.
그런데 심각한 얘기는 다 짤리고 농담만 편집되었다.
오늘 그 편집된 심각한 얘기를 하도록 하겠다.
난 의사, 프로그래머, 경영자, 교수를 하면서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교훈을 얻었다.
그 교훈을 말하려 한다.


1. 연구소 시작하기까지

: 의대에서 의학공부를 열심히 했었음. 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기초의학을 했다.
어느날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것이 있다고 기사가 났다. 그 기사를 보고 호기심에 컴퓨터를 뒤져서 봤다.

그러자 50장 중의 디스켓 중에 3장이 감염되어 있었다.
깜짝 놀랐고, 화도 났었고, 무섭기도 하고, 호기심도 있었다.
그래서 뒤져보기 시작했다.
세균도 현미경을 써야지 보이는 것처럼, 디버그라든지 코드뷰라든지 하는 프로그램을 써서 프로그램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보니 어렵지 않더라. 그런데 이 바이러스는 자기가 혼자서 실행이 된다.

바이러스가 하는 일이 1,5를 바꾸고 2,3을 바꾸는 건데, 그것을 반대로 하면 원본 그대로 될 것 같았다.

하루밤을 새서 새벽녘에 프로그램 완성을 했다. 그리고 그 당시 컴퓨터 잡지인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 투고했다.
이 일을 계기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음. 학부때는 무의촌 같은 곳에 가서 봉사활동 하곤 했는데, 랩에 들어가다보니 봉사를 못하고 잇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7년 정도는 새벽 3시부터 아침 6시까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충분했다.

그런데 그 후에는 바이러스가 너무 늘어나서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지도교수인 상태에서 지도학생을 신경써야 하는데, 컴퓨터 프로그램을 하고 있자니 지도학생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감히 결정을 내리는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실패를 하면 사람 발목을 잡는다. 그런데 성공은 더하다.
한번 뭔가를 가지게 되면 이것을 놓지 않는 한도 내에서 결정을 하게 된다.
원숭이가 캔디를 잡으면 사냥꾼이 다가오는데도 놓지 않듯이 말이다.
결국 성공이나 실패나 똑같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할 때는 성공했거나 실패했던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 이야기나 평가에는 항상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주위사람들이 원하는 선택을 하게 되면 첫 1,2 년은 괜찮고 주위 사람들이 만족하는데 3,4년이 지나면 자신도 불행해지고 주위사람도 불행해진다.
결국 장기적으로 나와 주위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면 자기가 행복한 선택을 해야 한다.
자기가 행복하면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은 섭섭해도 장기적으로는 (그들은 자신이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들이니까) 결국은 행복해진다.

미래의 결과라는 것을 미리 욕심내면 안된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선택을 하고 노력을 하고 운이 따라주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데,
그런 과정 거치기 전에 결과를 따지게 되면 판단을 그르치기가 쉬워진다.

중요한 결정을 하려고 하면 과거에 상관없이, 과감한 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결과에 욕심내서도 안된다.
선택에 주어진 상황만 보고 , 어떤 선택을 하면 진정으로 의미를 느끼고 재밌게 느끼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라.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이 7년동안 괴롭더라도 일하다보면 재밌어서 시간이 금방 갔었다.

마음 정리가 금방 되서 의대교수를 사퇴하고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했다.



2. 기업을 하게 된 후
한 분야에서 일하다가 다른 분야로 가게 되면, 당연히 먼저 전문가로서 시작한 사람들과 경쟁이 안되고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무수한 단점 속에서도 유일한 장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기존에 아무도 의문을 던지지 않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명제에 관해 새롭게 질문을 던지고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전에는 의사, 프로그래머, 대학교수였는데 자신이 혼자 열심히 해서 전문성을 쌓은 전문가 일이었다.
경영이나 조직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다음과 같은 3가지 기초적인 경영학적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하였다.


(당연한 질문들)
1. 왜 사람이 모여서 일을 할까?
>>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커다란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2. 회사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 답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역질문을 던졌다. 만약 회사라는 존재가 없어진다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디즈니라는 회사를 떠올려 보았다.
이것이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을 했는데,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꿈이 없어지더라.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가지는 의미는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회사가 자아실현을 하는 장이라든지,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준다는 것이라든지 하는 의미보다도 더욱 값진 의미다.

3. 기업에서서 수익이 과연 목적(Goal)인가?
>>
만약 돈버는 것이 목적이라면, 수단을 결과를 정당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빵집이 값싼 중국산 재료로 빵을 만들어서 수익을 내면, 수익을 낼 수는 있지만 사회 구성원들에게 해악을 끼친다.
수익이라는 것은 결국 기업 활동을 열심히 한 결과(Result)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중에 유학을 가서 알아보니 피터 드러커도 같은 생각을 했었고, 대부분의 경영학 교과서에도 수익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라고 정의하더라.
그런데 왜 수익이 목적이라는 것이 국민 상식이 되었는지 의문이다.


회사가 경영이 잘 안되면 , 대표가 문제다.
그런데 경험이 없다보니 대표가 뭘 못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결국 고민 끝에 한 선택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간접경험을 최대한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당시 유펜에 Management of Technology (유펜, 기술경영 전문대학원) 과정이 있어서 그곳에 입학하기로 결정을 했다.
CEO인데도 미국가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생겼는데, 한글과 컴퓨터에서 마케팅과 세일즈는 대신 해준다고 했다.

결국 필라델피아에서 이메일로 경영을 했다.
미국이 아침이면 한국은 저녁이다. 아침에 한국에서 업무 보고 이메일을 받으면 고민을 한 후 저녁에 이메일을 준다. 그때는 한국이 아침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그것을 토대로 회사를 경영했다.

여태까지 의학이나 컴퓨터공학은 곧바로 현실 적용이 쉽지 않았는데, 경영은 곧바로 현실에 적용이 가능한 실용적 학문이어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수업에서 조직도 상의 문제점들을 확인하고 새롭게 조직도를 짜라는 숙제가 나오면, 그 숙제를 한 뒤 그걸 이메일로 보내면 다음날 한국에서 조직 개편이 되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2년동안 이틀에 한번밖에 자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마케팅 교수같은 경우는 뒤쪽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걸어오면서 학생들을 읽게 시킨다. 그 정도로 시간을 아꼈다.
수업은 빡셌다. 매 수업마다 Reading material 100page정도 읽고 discussion을 해야 했다.
안 읽고 들어가면 교수에게 비인간적으로 체크를 당해서 밤을 새워서 읽어야 했다.

그런데 당시 영어 실력으로 아무리 잘해도 한시간에 10페이지 읽었다. 결국 10시간동안 밤을 새워서 읽어갔다.
학위 경험을 하러 간 것이 아니라 간접경험을 하기 위해해 간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7년동안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했고, 연이어서 2년동안은 2틀에 한번씩 잤다.


3. Establishment

97년도에 한글과 컴퓨터 망해가면서 동시경영도 힘들어졌다.

10월 말에 한국에 귀국한 뒤 10년동안 강행군을 한 것에 건강이 안좋아 져서 병실에 실려갔다.
그와 함께 IMF 가 일어났다. 그리고 병실에서 TV를 통해 imf 봤다.

국가가 부도위기인데 안연구소 같은 것은 더더욱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되었다.

우선 경영학 배운 힘이 컸다.
사실 외국에 가서 "무엇을 배웠냐?" 하고 누군가가 물으면 말할 것이 없다.
결국에 배우고 남은 것은 공포감이었다.

예전에는 경영은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의사는 10년 공부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하지만, 경영은 자격증 없이 최선의 판단만 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외국에서 경영을 제대로 배워보니, 경영은 [회계, 마케팅, 전략, 프로세스, 인사/조직관리] 이 다섯 분야에 대해서 최선의 판단을 하는 것이 경영자가 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인 것은 이런 것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주위 상황이 끊임없이 바뀌게 되는데 이에 따라 실시간으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자기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게 모티베이션을 해야 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해시켜야 하고, 인프라를 만들어야 하고, 인사 평가-보상 시스템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일하게 해야 했다.
이렇게 넓고 복잡한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공포감만 남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런 공포감에서 배운 최선의 선택은 risk managemenet였다. 가능하면 risk를 최소화하는 경영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 투자가 필요하면 빚을 안쓰고 자기자본으로 했고, 같은 비용이 필요하면 고정비용이 아닌 변동비용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좋은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IMF 가 오면서 공격적으로 운영하던 회사들이 줄줄이 망했는데, 안 연구소는 보수적으로 운영해서 살아 남았다.
그리고 실업률이 증가함에 따라 중소기업으로도 훌륭한 인력들이 오기 시작했고, 임대료 등등이 줄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상황이 더 좋아졌다.

이 때 아마 5년 정도가 있어야 이 위기가 지나갈테니, 준비를 하자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인사관리 시스템 정비, R&D, 협력업체 만들기 등등을 하면서 준비를 했다.

그런데 99년 4월 26일날 CIH 바이러스가 침투해 50만 대의 컴퓨터가 동시에 망가져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온 나라가 엄청난 공황에 빠졌다. kbs 9시 뉴스에 바이러스가 최초로 헤드라인으로 떴다.
그 후 1년에 시장이 300% 가 성장을 하고, 안 연구소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99년 후반 즈음부터 벤처 거품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묻지마 투자가 많아졌다. 이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묻지마 투자는 투자의 실패율을 높일 것이고, 사람들은 그 경험으로 투자를 꺼리게 되어 벤처 산업의 미래가 어둡게 될 것이라고 예감했다.

그래서 일부러 기자에게 연락하여 현재 벤처기업의 95% 가 엉터리라고 인터뷰를 했다.
(황순영 기자. 현재 NC소프트 상무)
그런데 이것이 전면 인터뷰가 남. 이 인터뷰에서 3가지 예측을 했다. 사기로 인한 금융 사범의 등장, 코스닥 하락, 벤처 업계 몰락을 말이다.
이 예언은 적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뀐 건 없고 욕만 먹었다. 어떤 사장은 자신에게 전화해서 어제 한다고 했던 투자가 오늘 그 기사 때문에 취소되었다고 30분동안 욕만 했다.


당시 2000년이 다가옴에 따라 y2k 사건도 일어났다.
천년에 한번 오는 기회를 잡으려고 여러 백신회사들이 허위광고를 하며 y2k 에 대비하라고 백신 소프트웨어 판촉을 했다.
99년 4월 26일에 cih는 3개월동안 몰래 복사를 해서 시한폭탄을 터뜨려 30만대를 폭발시켰다.
그런데 반면, 12월 중순에는 y2k 바이러스가 깔려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100% 거의 확신을 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빤히 아는 백신회사들이 사기행각을 벌이니 화가 났다.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안 연구소에서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냈다.
그런데 그 보도자료가 매일경제, 경향신문에만 실렸다. 편집 과정에서 모두 제거한 것이다.

이 때 사회의 관성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을 깨달았다.
기자 한명은 틀린 기사를 내도, 자기 이름으로 반대되는 기사를 절대 안 쓴다.
용기를 내서 정정기사를 쓰려 해도 데스크에서 짜른다.
기자 한 사람만 해도 그런데 관성이 강한데,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완벽한 사회의 관성이 된다.
이게 심하게 되면 사회 구성원 모든 사람들이 틀린 방향이라 해도 계속 가게 된다.
y2k에 대한 두려움의 관성이 반대의 면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 때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이 옳은가 회의도 들었다.
닉슨과 마오쩌뚱의 중-미 회담 때 전문가들은 그 회담이 성공할 거라고 한 사람은 20%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회담이 놀랍게 전격 수립이 된 후, 똑같은 전문가들에게 가서 물어보니, 그 중 80%가 자신은 성공할 것이었다고 소신있는 의견을 냈다고 얘기를 했다 했다.

사람들은 세상살다보면 힘든 일이 많다. 그러다보면 자기 합리화를 위해 자신의 기억을 왜곡을 시킨다.
즉, 무의식 적으로 자기 마음 편하게 하려고 기억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벤처거품이 꺼진 후에 95%가 망할 것이라고 자신이 한 말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에게 30분동안 욕을 했던 사람도 95%가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기억을 왜곡시켰었다.

이것으로 보아 사회적인 발언은 할 값어치가 있다고 느꼈다.
그 순간은 아무 효과가 없고 욕을 먹을 수는 있지만, 그 순간을 기점으로 사람들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인은 먹이사슬 속에 있어서 다치기 때문에 사회적인 발언 하기 힘들지만 사회적 발언은 분명 할 가치가 있다.


4. Challenge of Ahnlab

2003년이 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그런데 오히려 이 시기 가장 고마운 시기였다.
가장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다.

잘되는 시기를 어떻게 보내냐는 어차피 잘되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다.
나쁜 시기를 잘못보내면 회복을 못하고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
정작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보내냐다.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느냐는 것을 3가지 깨달았다.


1) 유혹에 빠지지 말라.

기업들이 어려울 때 분식회계를 한다. 없는 재산을 있는 재산처럼 보이게 한다. 이는 달콤하다.
그런데 이런 가짜 재산이 생기면 기업이 죽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
어려운 시기의 편법은 단기간은 편하지만 잘되는 시기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독과 같다. 주홍글씨다.


2) 문제를 고쳐라

사람은 문제를 고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잘될 때는 절대 문제를 못보고 고치지 못한다.
문제는 어려울 때 고칠 수 있다. 어려운 시기는 문제를 고치라고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이다.
이 기회를 자기걸로 가질 수 있도록 준비를 해라.
'운'이라는 것은 준비와 기회가 만나는 순간이다.

문제를 고치지 못하게 되면 그 운을 다른 조직, 국가가 가져가게 된다.
결국 자신의 기업 자체가 불행을 초래하게 될 수도 있다.


3)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

'stockdale paradox' 은 전쟁 영웅 이야기다.
그는 7년의 걸친 포로생활 끝에 어떻게 월남군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았는가?
낙관주의자들은 전쟁이 빨리 끝날 것이라고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믿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크리스마스에도 못나가면 부활절에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이루어지지 않자 지속적인 자기에 대한 실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죽어 나갔다.
나중에는 현실주의자만 살아남았다. 현실주의자들은 소망과 현실은 별개라고 인정하고, 전쟁은 오래 걸릴 것이라고 직감했다.
현실주의자들은 현실은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살아서 고향에 돌아갈 운명이라고 믿음을 가졌다. 결국 이런 사람만 살아남았다.


뜨거운 가슴차가운 머리를 가져야 한다.
차가운 머리란 현실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이다.
뜨거운 가슴이란 미래에 대한 열정과 믿음이다.

반대로 뜨거운 머리란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막연한 낙관이다.
어려운 시기는 긴 법이다.
뜨거운 머리는 이 기나긴 시기를 버텨나가지 못한다.
낙관주의자들은 냉정한 현실을 깨닫게 되면 버티지 못하게 된다.



5. 2004년 / 가장 좋았던 시기

2004년에 안철수 연구소가 한국에서 존경받는 기업 10위 안에 들어갔다.
삼성, SK, 유한양행과 함께 말이다. 이들의 평균 매출은 40조였다.
그들의 0.1%의 매출(당시 400억)에 불과한 안철수 연구소가 같이 들어간 것이다.

처음 경영을 시작하면서 질문해 보았던 3가지 개념이 작다면 작은 것이지만 이것이 경영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판단을 내리게 해 주었다.
자신이 이루어낸 가치를 여러 사람이 보게 되니까 사람들이 인정을 하기 시작을 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소프트웨어 회사로서 가장 좋은 성과를 냈었다.
무료로 배포한 소프트웨어의 가치는 수천억이라는 결과도 나왔었다.
이때가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다.

경영은 잘하고, 재밌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10년 정도 하니까 공포감도 극복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다른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됨.

신문에 칼럼을 내고 그만두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학생으로서 공부를 한다는 얘기도 했었다.


글이라는 것은 무섭다. 사람은 죽어도 결국 글은 남게 된다.
이해타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변명을 위해 글을 써놓으면 죽어도 부끄럽게 된다.
글은 역사의식을 지니고 써야 한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있는 그대로 썼다.



패널 질문)

1. (의대 교수 김옥주 교수 - 안철수 교수 2년 후배, 남편은 동기) 의사 로서의 길을 포기했는데 우리는 아깝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이 단기적인 것과 장기적인 것이 있다.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좋지만, 장기적으로는 힘들다.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 이기적이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도, 주위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


2. (위와같음)영혼없이 의치한으로 몰리고 있는 전국가적인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업만족도 최하위 1위 : 모델이라 한다.. (cf. 직업만족도 1위 : 사진작가.. // 둘이 어떻게 같이 일을 하는지 의문이 듬?)
직업만족도 최하 2위 : 의사다..
3위 : 화물운전사다.
4위 : 건설기계 운전사다.
굿모닝 닥터스에서 조사를 한 것이 있는데, 자기 직업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3/4가 자신의 직업을 싫어한다고 한다.
3,4 위는 그나마 노조라도 있어서 항의라도 할 수 있는데, 의사는 그것마저 하지 못한다.


왜 정작 의사들은 왜이리 불행할까 ?
은사님 중 한명이 그 말씀을 하더라.
의사는 똑똑한 사람이 필요없다. 성실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와야 한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대개 내성적이고 친구도 별로 없다.
그런 학생들이 성적이 되니 부모님이 의대를 가라고 해서 의사가 된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냐?
의사는 본질적으로 매일 처음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방안에서 혼자 공부하기 좋아하는 내성적인 사람이 그런 일을 평생하면 점점 더 힘들어지고 불행해진다.
그리고 환자들도 안다. 의사가 자기 싫어하는 것을..
그런 병원은 잘 되지도 않는다.
보통 융자 받아서 인테리어 하는데..결국 병원이 잘 안되고 불행해진다.

결국 직업을 택할 때 전망을 택하거나 안정을 택하기보다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면에 맞는 것을 택해야 한다.


3. (신효필 인문대 교수) 무릎팍 도사 등에 나와 인기가 많은데, 대통령 등 정치가로서의 생각은 있는가?

나의 아버지도 의사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님을 보면서 살았다.
나는 확신했다. 자신도 아버님처럼 백발에 가운입고 환자 열심히 보겠다고.


그런데 열심히 살다보니 오히려 의사를 그만두게 되더라.
나라는 사람은 미래계획에 맞는 사람이 아니다.
매 순간 열심히 살면 그 다음 선택이 자신에게 다가온게 되더라.
회사가 잘되는데 열심히 살다보니까 물러나야 되는 순간이 왔다.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미래 계획 안 세우고 살아야지' 생각을 하고 산다.
의미를 느끼고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라.


4. (심규석 전자과 교수 - 내 지도교수님!!) 난 빌게이츠를 굉장히 존경한다. 기업을 하다가 중간에 스탑을 하셨는데..
중간에 멈추시려는 생각인지, 아니면 오히려 학생들을 키워내서 더 큰 기업으로 하려는 생각인지?

2004년 회사가 굉장히 잘나가고 실적도 좋았었다.
업계에 나가도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람들이었고 모든 사원들이 본인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보통 CEO들이 학회를 안나가는데, 1년에 2번 정도 큰 학회를 갔다오면 우리나라 최고 전문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산업 구조가 안바뀌면 한 회사가 크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안 연구소도 거기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도 자신이 어떻게 될지 미래는 모름. )

그리고 현재 소셜 네트워크 앱을 개발하는 "고슴도치"라는 사내 벤처가 안 연구소 내에 있고 자신이 관리한다.
아직 완전히 손을 뗀 상태는 아니다.


5. (위와같음) 한국의 수업과 미국의 수업은 어떻게 다른지 말해줄 수 있는가? (교수나 학생 등등..)

미국 교수들이 한국인 제자들을 길러본 경험이 많다.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그들은 일을 시키면 너무 잘한다.
그런데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답을 구하는 과정이 다른 것을 찾으라고 하거나,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한국 학생들은 완전히 거기서 막힌다.
창조력이라는 것은 남이 정해놓은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좋은(또는 엉뚱한) 질문을 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학생이 많이 부족하다.


현대에서의 인재는 좋은 답을 구하는 사람이 아닌,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난 한국 학생들에게 이런 능력을 어떻게 키울까 생각했다.
기업가정신 같은 것도 깨달음을 줘야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뀐다.
깨달음을 어떻게 하면 많이 줄 수 있는가가 결국 나의 교육의 핵심점이다.


6.(신효필 인문대 교수) 자신도 언어학을 하다가 Computer Science를 하며 어려움을 많이 겪음. 학생들은 여러 분야를 잘 넘나들면 잘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있음.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지 않고서 융합을 해도 괜찮은지?

토마스 프리드먼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뉴욕타임즈 중동지방 종군기자다.
그는 중동지방에서 활동하며 그 지역의 현대 정세 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까지도 전문성 쌓았다.
그 후에 월스트리트에서 금융에 대한 전문성을 쌓았다.
그 후 전혀 상관없는 두 분야의 연결고리를 볼 수 있었다.
이 사람은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해 글을 썼는데, 이보다 이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한 사람은 없었다.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 뿌리가 있는 상태에서만이 다른 분야에 융합이 가능하다.
자신의 한 분야가 얕으면 절대 그런 것이 생기지 않는다. 

난 중간에 그만둔 분야가 없다.
의대 교수도, 컴퓨터 프로그래머도, CEO로서도 배움의 과정에 도중에 그만둔 적이 없다.
그것이 다른 분야로 전환했을 때 힘이 되었다.
대학 학부 졸업한 사람이 석사를 융합 학문부터 시작하는 것을 좋게 생각 안한다.
연결하는 수준이 깊이가 있을 수 없다.
한 분야에 뿌리깊게 박은 다음에 다른 분야에 대한 응용/융합을 생각해야 한다.
너무 일찍 융합을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이것도 스타일이기 때문에 꼭 단정지어서 말할 수는 없다.


7. (김옥주 교수)
자신도 의대였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았음. 그러나 굉장히 painful함. 수업을 들으려 역사학 책을 외웠는데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고 굉장히 당황. 그 과정이 힘들었는지?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융합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여러 분야에 스펙을 쌓아간다.
하지만 실제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 알게 되었다.
다른 분야로 가기 위해서는 노력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
심리적, 경제적, 육체적으로 엄청나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다.

그리고 고생해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서 직업을 구할려고 하면 자리가 없다.
예를 들어 의대 --> 법대를 하면, 의대나 법대에서도 고생을 두배로 했는데도 자리가 없다.
융합 인력을 뽑으려면 총장이나 그룹 회장의 믿음을 가지고 뽑아야 겨우 자리가 생긴다.
한국에서는 그런 사람이 극소수이기 때문에 더더욱 기회가 없다.
(물론 앞으로는 많아지겠지만)


<학생 질문시간>

* 강연을 인상깊게 들은 대학의 초년생인데, 학생 신분으로 오랫동안 지냈는데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임해야 하는가?

학생 때는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면 의미를 느끼고 재미를 느끼고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생각을 해야한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선 잘 모른다.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알아야 한다.
자신도 사기 당할 타입이라 경영만은 절대 못한다 했는데, 일단 해보니까 남들 만큼은 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평생 경험 못하고 늙어 죽었을 것이다.
세상에 수많은 일 중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그래도 선입관에 의해 분류를 하지 말고, 직접 시도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 비인간적인 스케쥴을 살면서 하루하루를 지냈는데, 그런 생활을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며 오래 지속할 수 있었는지? 몸에 무리가 많이 갈 것 같은데..

나는 나 자신을 잘 못믿는다. 그냥 놔두면 얼마나 풀어질 수 있는 사람인지 잘 안다.
그 때 쓰는 방법 중 하나가 미리 대외적으로 약속하는 것이다.
난 책임감은 굉장히 강하다.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최신 컴퓨터 정보, 최신 기술을 이해해야 한다.
그 때 썼던 수법이 있다.
미리 잡지사에 전화를 하여 (자신이 모르는 ) 새로운 이슈가 되는 분야에 대해 글을 쓴다고 무작정 약속을 해 버린다.
그 후 그 약속을 지키려고 고생고생해서 글을 쓰고 나면, 그 분야에 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 수준이 된다.

자신에게는 학위 하나 하나가 열심히 살았다는 (과정을 인내했다는) 흔적이다.
이렇게 외부의 힘을 이용해서 자신의 장점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자신이 늦었다고 생각을 하고 살면,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다.


* 고슴도치 프로젝트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대기업과 벤처기업은 차이가 있다.
대기업에서는 전략을 세우면 그 전략대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주안점이다.
벤처기업은 원래 세워놨던 전략/사업계획이 원래 있던 것보다 상황에 따라 99%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 주위에 바뀌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적응하는 것이 미덕이다.

고슴도치 팀은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미국은 마이스페이스가 있는데도 페이스북이 따라오고, 계속해서 생겼다.
플랫폼이 하나가 모든 것을 다 해볼 수 없고 빈틈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은 싸이월드만 있다.
그래서 킬러 앱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잘 안되자 3번 방향수정을 해서 앱 전문 서드파티로 가도록 계획을 수정했다.
이번에 3번째 수정을 해서 페이스 북에 올라갔다. (믹시도 런칭함)

이는 두번째 창업경험이다. 안 연구소에서는 처음 아이템을 바꾸진 않고 밀고 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커다란 전략을 세번이나 수정하니 한번 맞았다. 재밌는 경험이다.
앞으로 이런 앱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앱, 안드로이드 앱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소수의 인력으로 열심히 해볼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큰 위험부담은 없고 도전해야만 하는 분야라고 생각을 했다.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른 방법이 어떤 것들이 또 있는가? 정치할 생각은 없는가?

정치도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다. 교육도 그 중 하나다. 기업도 그렇다. 이런 다양한 분야들 중 어떤 일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난 현재 상황에서 교육 쪽에 몸담고 있으면서 하는 것이 잘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을 했다.

전쟁 : 적을 믿으면 안됨.
정치 : 적을 믿어야 함.

우리나라의 맥락에서 보면 적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정치를 기본적으로 할 수가 없다.
아마 정치는 힘들지 않을까?


*45살인데,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죽어도 후회는 없는지?

성공의 정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마다 성공이라는 것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의가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외부에서 보는 성공 (돈, 명예, 높은 직위)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르게 느낄 것이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성공이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는 뭘 이루면 난 성공했다고 느낄 수 있는가?
-이것을 이루면 여한이 없이 눈을 감을 수 있는가?

난 이 대답에 성공이란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 대답을 한다.
크로마뇽인의 벽화를 보면 누가 했는지는 몰라도 그 사람이 사냥을 잘하고자 했다는 의지는 알 수 있다.
자신이 존재 했을 때와 존재하지 않았을 때 그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자신의 이름은 남지 않더라도, 나로 인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다든지, 바람직한 제도가 만들어진다든지, 책이나 조직이나 일이 남는다든지 하면, 그것이 자신에게는 가장 가치있을 것이다.


나에게 길지 않은 인생은 매 순간마다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며, 가능한 한 많이 남길 수 있도록 하려는 선택의 과정이었다.
자신있게 말 드릴 수 있는 것은, 내일 죽어도 난 후회가 없다는 것이다.

MBC 높은 분 :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라 한다.
이런 것들이 성취가 되면 눈을 감을 수 있다 한다.
이런 말도 같은 맥락이다.



*좋아하는 것인데 잘하지 못했었다면 포기했을지? 그런 갈등을 겪는다면 해줄 말은 없는지

마이클조던은 농구하다 야구를 좋아해서 마이너리그로 갔다.
그리고 잘 못하니까 다시 농구로 돌아왔다.
마이클조던 조차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을 혼동한 것이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확실히 다르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우선 찾아야 한다.
잘해야지 외부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성취감도 높아지고 결국 좋아지게 된다.
이런 일을 찾는 것이 학생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자 기회의 시간이다.


*본질과 자기기준이 명확하고, 거기에 준하여 사고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함. 인재선발기준에 대해서 인재상에 대한 본질에 대해서 얘기해줄 수 없는지.

1) 사람을 많이 뽑다 보니까..어려워지는 것이 있다.
사람 타입을 정형화하여 이 사람은 아니라고 하면 안되는 것을 느꼈다.

2)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다.
친한 친구인데 사업하면 깨지곤 한다.
사업하면 친구에게서 보지 못한 밑바닥이 다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다보면 실망을 하게 된다.
결국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이 결국 오래간다.

성격이 달라도, 취미가 달라도 좋은데, 가치관이 같아야 오래간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다.
회사도 경영자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다.

3) 스킬 셋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탤런트가 더 중요하다.
그것을 가려내기는 참 쉽지 않다.
홍보 쪽에 인력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기보다는 그런 쪽에 발전할 가능성이 맞는 사람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
그래야 그 사람도, 회사도 같이 발전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하는 것이 굉장히 쉽지 않다.


*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봤다고 했는데, 우리들은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한 교육은 받지 못했다. 갖춰야 할 생활습관이나 꼭 지키고 싶은 신조는 어떤 것이 있는가?

우선 한 분야에 대해서 전문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와 함께 다른 분야에 대해 상식이나 포용력을 가지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

아이폰은 하드웨어 끼리의 싸움으로 봐서는 안된다. 한국기업이 하드웨어 싸움으로 보고 하드웨어로 승부하려고 한다.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은 하드웨어 끼리의 싸움이 아닌, 비지니스 모델 끼리의 싸움이다.
현재 한국의 스마트폰은 하청구조다. 값싼 부품을 조달받아 경쟁한 것이 한국의 경쟁력이다.


하지만 애플은 그렇지 않다. 주위에서 수평적인 관계에 있는 서드파티 회사들이 자발적으로 소프트웨어 공급을 해주기 때문에 힘을 받는 것이다.
결국 수평적인 네트웍 상의 싸움이 된다.
닌텐도와 플스3의 싸움에서 플스3가 하드웨어가 우월한데도 닌텐도가 이기는 이유가, 닌텐도에 공급을 하면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수직모델과 수평모델이 싸우면 수평모델이 당연하게 이긴다.
한 분야만 바라보면 2차원만 보게 된다.
물건은 3차원이라서 다른 시각에서 봐야 된다.
다른 분야에 대한 깊이있는 상식과 포용력을 갖고 있으면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습관적으로 질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굉장히 당연하게 보이는 것도 생각해보면,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된다.


*전문성 키우라는 말 잘 알겠다. 그런데 학부만 졸업하는 사람은 전문성 없는데 어떻게 함? ㅠ

자신간은 경우는 기초부터 다져야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에 학교에 가서 배우는 방법을 택했다.
반면 빌게이츠는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 필요한 전문가들 불러서 학문을 했다. 그래서 전문가급 수준을 유지했다.

자신의 고등학교 친구중에 공부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어떤 참고서 즐겨 보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신이 학기 초가 되면 서점에 가서 눈을 감고 책을 더듬으며 감촉이 가장 좋은 참고서를 골랐다 한다.
그에게는 촉각이 가장 중요했다.
참고서가 모든 내용이 다 있는 100점 짜리더라도 감촉이 나쁘면 결국 자신에게 70밖에 소화를 못한다.
반면 80점짜리 참고서라도 감촉 좋으면 80을 100% 다 소화해서 결국 자신에게 좋은 참고서가 된다 했다.

위 일화처럼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각자 있다. 100점짜리더라도 자신에게는 50점짜리일 수 있고, 70점짜리더라도 자신에게는 70점짜리일 수 있다.


*현실적으로 대학생이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할지.

개인적으로 학생창업 반대한다.
조직생활 한번도 안해보고 산업구조도 전혀 모르고 시작을 하게 된다.
어음문제, 일하는 사람들 등등 전혀 모르고 뛰어들면 실패확률이 굉장히 높아진다.

졸업하고 나서 원하는 분야에 취직을 해서 2~3년 정도 일하고 나면 뭔가를 배우게 된다.
안되는 조직에서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고 배우게 되고, 잘되는 조직에서는 산업구조를 알게 되고, 컨택 포인트를 알게 된다.
결국 이런 경험이 쌓여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빌게이츠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다. 마이클 델 같은 경우도 그러하다.
그런 여러 사람들이 있으므로 자신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

만약 졸업하고 나고 자신에게 이 기회가 다신 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면 창업을 해도 좋다.
자신에게 효과적인 방식을 찾고, 흐름을 잘 보고 판단을 해야 한다.


* 친구들과 사업을 시작하고 실패하여 거지가 된 백수다. 서울역에서 자고 있다.
그런데 같은 친구들이 다시 한번 사업을 하자고 제안을 하고 있다. 친구들하고 사업을 하는 것이라는 것은 리스크가 큰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여전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과연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친구들끼리는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간다. 그러나 속깊은 부분들 까지 얘기하고 가야한다.
진심으로 믿는 가치관이 있다. 왜 이 사업을 해야 하고 돈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모든 세세한 부분들을 터놓고 얘기하며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다들 그런다. 인간관계가 말이 참 중요하다.
두 사람이 결혼하려고 하더라도 누가 청혼하지 않으면 평생 결혼 못한다.
말은 필수적인 것이다.
민감한 부분이더라도 친구사이에 있게 된다.
먼저 꺼내놓고 하지 않으면 결국 친구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좀 더 가까워지고 있기 위해서다.
이런 것을 해결하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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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트웨어 적인 측면을 강조했는데,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망하려 한다. 어케 해야 할지?

10년동안 독일에서 정신의학 공부해 온 친구가 있다.
정신과 병원을 열어서 상담을 받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상담이 끝난 후 진료비를 청구하면 환자들이 굉장히 아까워한다.
그래서 머리를 써서 영양제를 놓아주고 진료비를 청구하니 만족해하며 간다 하더라.

전문가의 조언, 지적 재산권 등등이 굉장히 중요한데 한국사회에서는 이를 공짜로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일자리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그것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뿌리깊은 선비문화가 있다.
전문가들의 가치 인정이 되야 여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자신도 이런 소프트웨어에 대한 위기감 공유 , 문제의식 공유는 되는데 여러가지 제도들이 나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 원문출처 : 스누라이프